기독교 신앙의 자유 허용 과정에 대한 자료( 2 ) - 예수교 전도 금지령
2003-10-02 12:40:26 read : 10104
김승태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대로 종교의 자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866년 한불수호조약 체결을 의논할 때 있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측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할 의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자유를 허용할 경우 주자학을 신봉하는 보수층과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하였고, 프랑스측도 지나치게 이 조항에 매일 경우 조약체결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조약 문항에 '교회(敎誨;가르친다)'라는 모호한 문구만을 남겨두기로 하고 타협하였다. 해당 조약문은 이 조약의 제9조 2항으로 "무릇 프랑스 사람이 앞으로 조선국에 와서 말과 글, 사물의 이치, 율례와 기예를 배우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모두 보호하고 도와줌으로써 두 나라의 우의가 두터움을 나타내며, 조선 사람이 앞으로 프랑스에 갔을 때도 이 규례에 따라 우대한다(凡有法國民人 前往朝鮮國 學習或敎誨 語言文字格致律例技藝者 均得保護相助 以照兩國敦篤友誼 至朝鮮國人 前往法國亦照此一律優待)"는 것이었다. 문맥으로 보아 전혀 선교의 의미가 없는 '교회(敎誨)'라는 문구를 그후 프랑스와 천주교측은 그 내용에 종교도 포함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조선 정부측에서는 단지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종교의 자유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조선 정부로서는 여기에 종교가 포함되지 않음이 분명했다. 이점은 조약이 체결된 지 2년 후인 1888년 4월에 조선정부가 [예수교 전도 금지령]을 발포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금지령과 관련하여 미국 공사관에 전달된 조회문은 다음과 같다.
"[예수교 전도 금지의 건]
발신: 독판 교섭통상사무 조병식
수신: 미 공사 단시모(丹時謨) 고종 25년 3월 12일, 서기 1888년 4월 22일
대조선 교섭통상사무아문 독판 조(병식)이 조회하는 일이라. 본 정부는 예수학 포교인 또는 전도인이 경성에서 서로 잇달아 그 괴이한 교가(敎家)의 도(道)를 대군주 폐하의 신민(臣民)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저 예수의 도와 어떤 종류의 학당이든지 조약의 항목에는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어떤 새로운 교든지 어떤 종류의 학당이든지 오직 조선국 정부의 위탁(權)이나 지령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금(禁)하고, 경성부 안에나 조선 안에 이후에 설치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니, 청컨대 귀 공사는 미국 전도인들을 훈계하여 정부의 하고자 하는 일을 따르게 하고, 중대한 불상사가 혹 이로 인하여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에 조회하는 바이다.
우(右) 조회함.
대미(大美) 흠명주차 조선관리 본국 사의(事宜) 겸 총영사 단(시모)
무자(戊子) 3월 12일"
다음은 이에 대한 미국 공사의 회신이다.
"한국 서울 미국공사관
외교문서 63호 1888년 4월 25일
조선 외무 독판 조병식 각하에게
각하:
한국에서 미국인들이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는 각하의 공문(조회)을 받았으며, 주의 깊게 그 내용들을 살펴 보았음을 삼가 알려드립니다.
당신의 공문을 받기 전에 저는 평소에 한 사람과 이야기해오면서 그들에게 국왕 폐하의 원하시는 바와 조선 제국의 관습과 법규를 공경하여 받들라고 지시해왔습니다.
저는 각하에게 저의 모든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하여 미국 거류민들이 조약 하에 조선 정부의 권리를 조심해서 준수하고 그 조약의 조항에 허용된 특권과 권리들에만 제한하여 활동하도록 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참고로 저희 정부에 각하의 공문에서 취급한 주제에 대해 언급해 두었습니다.
각하의 충실한 종임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딘스모어(Hugh A. Dinsmore)"
물론 이러한 금교령(禁敎令)의 배경에는 명동성당 건립문제를 둘러 싼 조선정부와 가톨릭 선교사들과의 갈등과 선교사의 활동에 대한 조선정부의 의심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조선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외국인 선교사의 기독교 포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금교령이 내려진 때는 마침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북부 지방을 여행하며 순회 선교를 하던 중이었다. 언더우드 부인은 그때의 일을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언더우드 씨와 아펜젤러 씨는 북쪽지방으로 긴 순회 전도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은 언더우드 씨에겐 두번째였다. 그들이 자리에 없는 동안 가톨릭 교도에 대한 조선 임금과 내각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러서 마침내 각 개항장에서 더이상 외국 종교를 전파하지 못 하도록 하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우리는 시골에는 갈 수가 없었다(오늘날에도 특별 통행권이 없이는 마찬가지다.) 그 전에 이미 중국에서 그와 비슷한 곤경을 치르고도 거기서 아무 교훈도 얻어내지 못한 가톨릭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언제나 중심지의 높은 장소를 좋아하는 습성에 따라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땅을 장차 자기들의 성당을 지을 부지로 삼겠다고 했다. 그 땅은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서 옛 임금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조선인 중개업자의 중개로 이 땅은 임금도 모르는 사이에 가톨릭 소유가 되었다. 국왕은 신부들과 프랑스 공사관 양쪽에다 다른 땅을 골라보라고 설득을 하는 따위의 온갖 애를 다 썼으나 그들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양보하지를 않았고 마침내 자기들의 교회의 기초를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범령이 잇달아 발포되었고 미국 공사는 그 법령에 따라 할 수 없이 돌아온 우리들에게 선교 사업을 철회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를, 아니 명령을 했다. 사실 이땅에 복음을 전하려는 너무 성급한 시도 때문에 이 기분 나쁜 법령이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법령은 적어도 얼마 동안은 우리의 일을 끝장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곧 언더우드 씨가 조선의 지체 높은 양반들과 각료들로 구성된 위원회로부터 넉넉한 봉급을 주고 학생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쳐도 충분히 이해하겠다고 하면서 정부가 설립한 학교를 전적으로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아 이 상황을 간신히 돌려놓았다.
틀립없이 불쾌감과 의심만을 살 것이라고 한 외국인들의 장담과는 달리 조선 정부의 엄청난 자신감을 보여 주었던 이 제의는 우리의 전도 사업에 대한 조선인들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제의를 깊이 고려해 보았으나 마침내 다른 일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밖의 다른 중요한 이유들로 거절하고 말았다.
우리들에게는 그 금령과 관련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들 중 몇몇, 아니 거의 대부분은, 그것은 지상의 법률이므로 기독교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일지라도 거기에 복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곧 학교에서 아침 기도를 올리는 것조차 증단해야 하고 조선사람들과 예배를 보아서도 안되며 하나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바꾸어 그 법령을 폐지하게 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조선 정부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나 그 반대로 도전을 한다거나 복종을 하지 않거나 하면 마침내 선교사업 전체가 이 나라에서 내쫓기고 말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 사람들 곧 지금은 주님 곁에 간 아펜젤러씨와 그의 부인과 언더우드 씨와 나는 그 법령이 우리들이나 우리의 일을 겨냥한 것은 결코 아니며, 또 비록 우리를 겨냥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조선 임금의 명령보다는 더 높은 곳의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의무는, 오직 사도에게 설교를 금지한 통치자에게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사도행전 4장 19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라고 말씀하신 권능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그 결과를 달게 받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전도 사업을 중단했다.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나 자기의 양심에 따라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 몇 사람은 작은 집에 모여 멀리에서나 가까이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공공연히 설교와 교육을 계속했다. 어떤 식으로거나 우리의 행동을 감추려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았다. 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다녔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크게 자랐고 이제는 어떤 한 지방의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선 문제로 인정을 받았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의 일을 위장하거나 감추거나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법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그대로 동양적인 관습에 맞는 일이다. 법령이 이미 사문화되고 쓸모없이 되었어도 좀처럼 그것을 폐지하지 않는다."(L.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1904, pp.13-15)
아펜젤러도 감리교 연례 보고서에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올해(1888년) 봄에 장로교 선교부의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나는(아펜젤러) 한국 북부 지방의 전도사업을 시찰하기 위해 출발했다. 의약품, 책(쪽복음), 소책자들이 팔렸다. 사람들은 서로 의약품을 사려고 안달이었고, 책과 소책자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책을 주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2주일 가량 여행했을 때 서울 주재 미국 공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는 우리가 서울을 떠난 후에 '대군주 전하의 명령이라 하여 한국 외부로부터 공한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국내에 거주하는 미국인 중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음을 한국 정부에서 알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정부 당국에서는 부당하게 여긴다는 것, 조약상 공인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중지를 요구한다는 것 등이다. 여기에 대해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므로 미국 공사로서 나는(딘스모어, 丹時謨) 당신들이 한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종교의식과 규례를 집행하는 것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해는 아니었다. 미국과 한국과의 조약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 정부의 반대에 맞서서 전도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았으므로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순종하자 정부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한 고관으로부터 들었다."(감리교 연례보고서, 1888)
이 금교령은 선교사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져와 얼마동안 선교활동을 주춤하게 하였지만, 그후 점차 조선 정부의 묵인으로 선교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언더우드 부인의 말대로 이 금교령이 그 후 유명무실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결코 이 법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따라서 1886년 한불수호조약으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확보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