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기록이요 기억이다. 그리고 역사는 자료를 통해 기록되고 기억된다. 따라서 자료의 뒷받침이 없는 역사는 적어도 객관적인 역사일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데 소홀히 해왔다. 1세기를 넘어 선 한국교회가 아직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채 분열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한국교회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는 지면이 허락되는 한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자료를 발굴·정리·소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발자취와 신앙 선배들의 행적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사는 자료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나 일반 독자들이 자료에 직접 접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자료의 소재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문·영문·일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된 것도 있고 한글로 된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어법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필자가 이해하는 한 되도록 쉬운 용어로 풀이하여 자료의 형식보다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소개할 작정이다. 그리하여 별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직접 자료를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최소한의 자료 소개만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시기의 선후를 따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사의 주요 자료를 소개하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의미 있는 절기와 관련되거나 새로 발굴되는 자료는 시기의 선후를 따지지 않고 우선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아무쪼록 이 지면을 통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한국교회사에 인식이 좀더 깊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연재가 마침 5월에 시작되기도 하여 이 번호에는 1883년 5월 한국 개신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신앙고백문을 남긴 이수정(李樹廷)의 신앙고백과 신앙시를 소개하기로 한다.
1. 이수정의 신앙고백(1883. 5)
"저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구석진 나라에서 태어나 부족하고 비루한 데 익숙하여 문명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여러분의 나라에 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여러분의 두터운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며,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겨우 큰 도(大道)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성서의 가르치는 바에 이르러서는 만분의 일도 엿보아 알 수 없어서 감히 스스로의 견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니, 오늘 이 성대한 모임에서 더욱이 어찌 도리에 어두운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에 가려운 바가 있어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여러분의 질정을 받고자 하오니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또한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신약 요한복음 제14장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안에 계신다.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분명히 드러나 있으나 그 의미는 오묘하여 이에 설교하신 요지는 신앙의 관건이 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깊이 탐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뜻에 대하여 반복하여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여러 선생들께서는 당연히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여 점차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힘써 깨우쳐 주시고 이로써 때때로 드러내 보여주시되 [대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안에 있다.] 하셨으니 곧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요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 확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요 나는 곧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치는 이미 곧바로 이해하기 쉬워 번거롭게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으니 이제 제가 다시 설명할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예수 당시 사도들은 친히 극진한 가르침을 받아 더이상 남은 느낌이 없었지만 오직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성스러운 시대에서 이미 멀어 배우는 자가 의미에 이치에 투철하지 않으면 큰 믿음이 나올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대개 하나님과 인간의 서로 감응하는 이치가 이와 같습니다. 비유컨대 등의 심지가 타지 않으면 빛이 없으니, 등의 심지는 도(道)를 향한 마음이요, 타는 것은 신앙심이며, 불은 하나님의 감응(神感)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응은 신앙심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갓 심지만 있으면 등이 되지못하니 그러므로 타지 않을 때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하며, 믿지 않을 때는 끝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단지 세례를 받고 남을 의지하여 생각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성도가 되지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심지가 끝내 타지 않으면 부숴 버리는 것과 같고,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밟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는 것은 소리가 종(鐘)에 있는 것과 같으니, 치면 소리가 납니다. 추(鎚)로 소리를 냅니다. 종과 추가 비록 갖추어 지더라도 각각 다른 곳에 걸려 있다면 소리가 나겠습니까. 그러므로 등은 큰 심지로써 태우면 빛이 크고, 종은 작은 추로써 두드리면 소리가 작은 즉 많이 구하면 많이 주어지고 적게 믿으면 적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오직 이루어지지 않을 리 없습니다. 만약 삼위일체의 뜻을 믿으면 곧 자기 자신이 삼위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대저 이 마음을 하나님의 전(殿)이라고까지 일컫게 되는 것이니, 그 신앙심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몸 안에 계신 즉 나는 곧 하나님의 몸 안에 있고, 하나된 마음이 극진해지면 그 사이에 터럭도 용납하지 못하니, 위나 아래 사방에 있지 않고 그의 움직임과 고요함, 말과 침묵(動靜語默)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었는지 아닌지 확실히 알고자 하면 다만 스스로의 신앙심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일이지 스승에게 묻거나 하나님께 묻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이 감응을 이루는 분명한 체험입니다. 다만 이 뜻을 깊이 연구하지 않더라도, 위로 하늘에 우리 아버지가 반드시 계시고 그리스도가 반드시 계시고 성령이 반드시 계심을 확신한 즉 죄 사(赦)함을 얻고 반드시 천국에 이를 것을 의심하지 않는 자는 성령의 감화로 마귀의 소요를 당하지 않고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특히 넓은 은혜요, 이치에 통달한 여부에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불교설(佛說)이 될 것입니다. 불교설에서는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하니 대개 공중에 사다리를 걸어두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넘어 오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聖敎)와는 어렵고 쉬움이 아주 다르며, 허망함과 진실함도 곧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1883년 5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전국기독교도대친목회에서 한 것으로, {七一雜報} 8권 21호, 1883년 5월 25일자와 {六合雜誌} 34호, 1883년 5월 30일자에 순한문으로 실려 있다.)
2. 이수정의 신앙시
이 자료는 이수정이 어느 일본 기독교인에게 보낸 편지와 몇 편의 신앙시를 당시에 일본에서 일하던 미국성서공회 총무 헨리 루미스(H. Loomis) 목사가 미국 감리교 선교지인 지에 번역 소개한 것이다.
" 내(이수정)가 귀국(貴國:일본)에 온지 10달쯤 되었습니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선생들을 방문하고 얼마동안 많은 새로운 책을 읽느라 나는 시를 지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끔 시상이 내 마음에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도 시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절반으로 잘린 무지개 같고 그 생각들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무엇이든 지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잘 짓지 못한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들은 나의 변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아름다움이나 가치가 없어도 그것이 먼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외국에서 온 돌이나 나무와 같기 때문이지요.
한국인들의 글은 어떠한 부조화도 피하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고, 그것이 나에게 글을 써 달라고 많이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시를 잘 못 짓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쓰려고 할 때 가끔 무엇을 쓸까 망설입니다. 이들 중 하나는 [우편신문(郵便新聞)]에 게재되었던 것이고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문을 보았을 때 나는 몹시 놀라고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시를 읽었고 매우 기쁩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이 도덕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들은 도처에 회람되고 있습니다. 고상한 분들의 말씀은 맛이 매우 달콤합니다. 나는 당신에 대하여 듣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당신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를 읽고서 당신의 얼굴을 뵙는 듯 합니다.
행복한 일을 만난 사람이 매우 슬퍼하고 외로운 곳에 살면서 그곳을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모국과 친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최근에 기쁨으로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램은 나의 조국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소개하고 우리 임금님과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관습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몇 편의 매우 미숙한 시를 지었습니다. 이것들은 별 맛이나 장점은 없지만, 다만 내 마음속의 생각과 바램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소박한 시골뜨기의 글이지만 호의로 보아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를 바람
나는 오랫동안 꿈꾸는 사람처럼 살았다네
어둠이 깊이 지배하는 동안
나는 깨어났네,
오! 온 세상에 영광이 흐르네
그것은 복음의 축복의 빛
내 영혼은 환희에 넘치네
오호 나의 조국! 오랫동안
죄와 잘못의 밤이 있는 곳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사
간절히 나는 기도하네
생명의 사자를 보내사
보다 좋은 길을 가르치기를
복음의 조화
온갖 세상 노래에서
조화되지 못한 영혼들을 우리는 만나지만
복음의 곡조에서
우리는 발견하네 완전한 조화를
인생의 귀에 얼마나 달콤한지
예수의 사랑의 노래 곡조
황홀 속에 가끔 나의 영혼은
하늘나라에 오르기를 동경하네
우리의 생각을 세상에서 옮겨
우리를 하늘로 이끌지 못하면
모든 음악은 가치가 거의 없고
주는 기쁨도 잠깐이라네
기독교의 진보
새들의 노래처럼 내게 들리는
기쁨의 곡조는 무엇인가
추수가 가까워 올 때
추수꾼이 부르는 즐거운 노래라네
그들은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것이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네
추수의 주인 되시는 분이
햇볕과 비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라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하러 보내시네
할 일이 많고
수고의 날도 많아
쉴 날이 거의 없다네
하나님의 선하심
새싹, 꽃, 익은 알곡
각각 그 속에 날이 흐르고
자연히 은혜 가운데 그것은 분명하네
하나님은 일하시네 그의 방식으로
그것은 현명하고 최선이라네
우리 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주어야 하실 지 아신다네
매시간 그분의 사랑스러우신 손은
우리가 살아가도록 은혜 주시네
나의 죄된 마음은 쉽게 병들었다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까지는
그 사랑, 미풍에 향기처럼
나의 영혼 기쁨으로 가득 차네
하나님의 일을 찬양하네
여호와는 높이 계시네
하늘과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그분이라네
우리의 눈을 돌려보는 곳마다
그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나네
우뢰와 폭풍 속에
그의 음성 들리고
어린아이 옹아리와
모든 새의 곡조로
조율하시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즐거운 찬양을 올리리
모든 나라 모든 언어로
끝없는 찬양을 그에게 드리리
고귀한 성서
세상과 그 모든 줄거움은
더이상 나를 유혹하지 못하네
새롭고 영원한 보화를
하나님 자신의 말씀 속에서 나는 보기 때문이네
거룩한 사랑을 말씀하시는
이 놀라운 말씀을 나는 읽네
거룩한 구절마다
지혜와 영광이 빛나네
어느 골동품 꽃병 속에 꽂혀 있는
꽃들의 향기처럼
모든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나는 좇아가네
설교의 어려움
오늘도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슬픈 잡념들이 있네
생각이 멀어짐에 따라
기쁨의 흐름을 방해하네
지치고 물린 것처럼 걸려 있는
잘못들을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네
무엇보다도 나의 조국에 대해서
나는 이 모든 것을 흩어버리기를 원하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줄 잘 알지만
나는 기꺼이 가려네
잡초가 자라고 있는 그곳에
나는 장미를 심으려네
* 원작 시는 우주적인 찬양이 주제다. 문체와 표현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모두 상실하였다. 이수정이 개종하기 전에 그의 작품은 모두 비관적이었으나, 지금은 기쁨이 넘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복음의 영향이다. - 일본 요코하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