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의 외국인 선교사에 대한 오해 - '영아(櫖兒) 소동' 사건
2003-10-02 12:40:53 read : 11878
김 승 태
조선 정부로부터 '예수교 전도 금지령'이 내려진 지 한 달이 조금 지나 이번에는 조선 민중측에서 반기독교 내지는 반선교사 소요가 일어나 선교사들과 주한 외국인들을 아연 긴장하게 하였다. 바로 1888년 6월 10일경에 서울에서 일어나 달포 가량 이어진 이른바 '영아소동'(櫖兒騷動, the Baby Riots)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선교사를 포함한 외국인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게 하여 사들여 삶아 먹고 눈은 빼어서 약이나 사진기 재료를 삼는다는 허황된 유언비어가 장안에 퍼져 이에 격분한 민중들이 무리 지어 외국인이나 그들에게 고용된 한국인들을 위협하였던 사건이다. 이러한 유사한 사건은 이미 중국에서도 일어나 1870년 천진교안(天津敎案)에서처럼 많은 사상자까지 냈던 일이 있었다.
이 사건 당시 신·구교는 모두 선교의 방편으로서 고아원과 학교, 병원 등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시중에서 가끔 어린아이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나 이러한 오해를 받기 쉬웠다. 더욱이 프랑스 공사관에서 근무하던 오봉엽(吳奉曄)이라는 조선 청년이 "외국인들이 어린아이의 고기를 먹고 어린아이의 피를 마시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도망하여 외국인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 오봉엽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은 외국인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거나 이들의 사업을 질시하는 자들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것에 반외세적인 성향을 가진 민중들이 분별없이 호응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비록 일시적인 일이긴 하였지만 이 사건으로 선교사들은 공사관의 지시에 의해 철수 준비를 할 정도로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그러자 각국 공사관은 조선 정부에 조회를 보내 항의하고, 이 일을 해명하는 방을 붙이도록 요구하였다. 다음은 미국 공사가 조선 정부에 보낸 조회문과 당일에 작성된 조선 정부의 고시문(告示文)이다.
"1888년 6월 18일자 조회
대미합중국 흠명주차 조선관리 본국사의(事宜) 겸 총영사 단(시모)
조회하는 일이라. 소문(消說; 소문 주장)이 갑자기 나기를 외국인들이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삶아 먹고 쪄 먹는다고 공연한 소문이 나매, 이 소문을 탄평할 계교를 고달(告達)하옵나이다. 이 헛소문으로 하여금 조선 정부가 괴로울까 하옵니다. 귀 독판과 여러 유지(有智)한 관인들이 이 소문이 허탄하고 믿을 것이 아닌 줄 아실 듯하옵기에 고달하옵나니 그 중 높은 정부로서 방(榜)을 만들어 관인을 개지(蓋之; 덮어 찍어)하여 각처에 성외(城外)까지 붙이사 이 소문이 옳지 아니함을 이르소서. 귀 독판께서 이 일을 아는 체 하시면 소문이 없을까 하외다."(美案 1, 365-366쪽)
"외인(外人) 유아도식(幼兒盜食) 풍문에 대한 정부 고시문
고종 25년 5월 9일, 서기 1888년 6월 18일
통리교섭 통상사무아문에서 효유(曉諭)하는 일이라. 현재 소문을 들으니 민간 마을에서 어린아이를 많이 잃어버리고 외국인에게 판매하며, 외국인은 심지어 삶아 먹기까지 한다 하며, 거리에서 종종 아이를 훔치는 흉악한 도둑을 체포하여 문초한다고 한다. 과연 소문과 같다면 외국인이 사람을 먹으니 처참한 분노를 이길 수 없다. 본 아문은 이 외교를 맡고 있어 본디 성명을 내고 성토할 겨를이 없었거니와 아직 분명한 실제 행적도 밝히지 못해 흉악한 도적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었다. 우리 인민 노소는 각각 몸조심하고 이후에 흉악한 도적이 유괴하여 팔거나 사 먹는 자가 있는 것을 만나거든 따라가 잡아 문초한 후 신고한즉 본 아문에서 마땅히 각국 공사와 만나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사람을 파는 흉악한 범인과 사람을 먹는 흉악한 도적은 즉시 처형하여 공분(公憤)을 씻을 것이니 모두 뜬소문에 소동하지 말기를 바라며 그 근거를 조사하여 찾기에 힘쓰기를 바라며 이에 간곡히 특별한 고시(告示)를 하노라. 무자(戊子) 5월 초9일"(俄案 1, 81쪽)
그러나 이 고시문은 각국 외교관들이 보기에는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마치 외국인들이 인신 매매를 하고 사람을 잡아 먹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독일 각국 공사들이 미국 공사관에 모여 회합을 갖고 이 고시문의 수정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조선 정부에서도 즉각 국왕의 교지를 내려 이에 대한 방을 한문과 한글로 써서 붙이도록 지시하였다. 실록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요즈음 민간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로 항간에 놀란 소동이 이보다 더 심함이 없다. 이미 여러 번 신칙하는 지시가 있었는데도 원인의 진실함을 드러내고 포착하지 못하여 점점 더 모두 소동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형조·한성부 두 관청과 좌우포도청에서 즉각 염탐하여 잡아들여 실상을 엄밀히 조사하여 법률을 적용하라. 백성들 가운데서 만약 진범을 제손으로 체포하는 경우에 절대로 사적으로 쳐죽이지 말고 곧장 법맡은 관청에 보고하면 그 진범은 즉시 사형에 처할 것이며 체포한 사람에게 크게 상을 줄 것이다. 혹시 과장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간에 걱정을 끼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근원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은 음흉하고 사특한 무리들을 확실히 염탐하여 잡아들여도 마땅히 일체 형벌과 상을 내릴 것이다.
그런즉 형조와 한성부 두 관청과 좌우포도청으로 하여금 한문과 언문으로 소상히 번역 등사하여 방방곡곡에 내걸어 붙이도록 분부하시다."([고종실록] 고종 25년 5월 10일조, 양력 1888년 6월 19일자)
그후 각국 공사들은 인천에 머물고 있던 자국 해군 병력을 불러들여 공사관을 수비하게 함으로써 무력적인 시위 의도도 보였다. 조선 정부에서도 소동과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하여 헛소문은 잦아들고 소동은 일단락 되었다. 당시 현장에서 이 일을 겪었던 장로교의 의료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은 그의 저서에서 그 때의 일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조선에 도착한 뒤 처음 몇 달 동안에 일어났던 또다른 재미있는 사건은 이른바 영아 소동으로 그 흥분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보다 몇 해 전에 중국의 천진에서도 그와 비슷한 소동이 일어나 결국 예수회의 사제들과 수녀들 그리고 두세명의 프랑스 관리들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학살당했다.
악의를 품은 몇몇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아이의 심장과 눈알을 도려내어 약에 쓰려고 조선 어린아이를 훔쳐오는 사악한 조선인들에게 돈을 준다는 소문을 퍼뜨려 소문은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주로 일본인들이 그런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마 그런 소문은 중국인들이 지어낸 것이거나 또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특별히 적의를 품은 다른 누군가가 지어낸 것인 듯했다. 언더우드 씨는 일본 공사에게 그 소문을 알려 공사 자신과 일본인들을 보호하게 하였다. 공사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조선정부에도 일본인들은 이런 일과 전혀 무관하다는 성명을 내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아려졌던 사실이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사악한 외국인들- 이를테면 우리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일이 되었다. 흥분과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격분한 사람들의 큰 무리가 모여들어 얼굴을 찡그리고 투덜대고 협박하였다. 자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조선 사람도 남의 아이를 유괴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 얻어맞기도 하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조선의 한 고급 관리는 자기 주위의 시종들과 하인이 잔뜩 있었는데도 가마에서 끌려 내려왔다가 가까스로 도망을 쳐서 살았다. 외국인들이 길거리에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로 생각되었다. 각국 공사관을 지키려고 해군들을 제물포에서 불러올렸고 몇몇 미국인들은 당장 필요한 옷가지들과 귀중품을 꾸려 항구로 도망칠 준비를 하기도 했다. 끔찍한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이를테면 독일 공사관과 영국 공사관 그리고 미국 공사관에서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이 피에 굶주린 작업의 본부는 물론 병원으로 생각되었는데 그것은 병원이 약을 만들고 병을 치료하는 곳이기 때문에 분명히 아이들을 살해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데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내 가마를 둘러싸더니 가마를 메는 교군꾼들에게 한 번만 더 나를 병원에 태워다 주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소리였으므로 그 다음날에 교군꾼들은 나를 절대로 태워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타고 도시 한 복판을 지나 병원으로 갔다. 병원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언더우드 씨가 나를 호위해 주었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 탈없이 갔다 왔다. 그리고 나는 위험한 순간에는 담대하게 머리를 쳐들고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는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시아인들을 감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외국인을 크게 보호해 준다는 것을 그때부터 줄곧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 유럽 외교관들은 실재로 우리가 엄청난 위협을 받고 있으며 언제라도 우리의 이 작은 단체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었다. 외부에서 낸 성명서는 어디에나 붙어 있었으나 처음에 나온 것은 용어를 잘 못써서 몇몇 '사악한 외국인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엄중한 처벌을 할 것이라는 뜻을 여전히 풍기는 글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 '사악한 외국인들'의 요구에 따라서 쓰여진 새로운 공고가 나붙었는데 그것은 어떤 외국인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중상 모략을 떠들고 다니는 자는 누구라도 체포될 것이며 체포된 뒤에 자기가 한 말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형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포졸들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두세 명씩 모여 서 있는 것을 막았다. 잡혀간 사람도 더러 있었고 소동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이 회복되기 전에 우리는 불안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좀 안정되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흥분이 고조되었던 어느 날 저녁에 미국 공사관으로부터 폭도들이 우리가 사는 집으로 쳐들어가려 한다는 제보가 있으니 제보가 있으니 공사관에서 총을 쏘아 신호를 하면 서로 신변의 안전을 위해 그 쪽으로 급히 피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별이 반짝이는 조용한 7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는 숙소 앞에 있는 자그마한 현관에 앉아 시원한 저녁 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에 갑자기 지평선 저쪽에서 불길이 휩싸인 끔찍한 집들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폭도들의 무시무시한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우리는 그곳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조선인 폭도들은 언제나 집에 불부터 지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면서 불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미국 공사관에서 쏘는 날카로운 총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이로써 실제 상황이 벌어짐에 틀림없는 듯하였다. 언더우드 씨와 헐버트 씨가 실수가 아니었는지 확인하려고 곧장 미국 공사관으로 갔다. 그러나 곧 이어 총을 쏜 것은 돌발적인 사고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집이 불탄 것도 동시에 일어난 사고일 뿐이며 함성도 불을 둘러싸고 군중들이 질러대는 흔히 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졌다. 아무튼 그것은 지금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방인들의 분노는 가라앉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셨으며,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위험은 지나가 버리고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L.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1904, 15-18쪽)
감리교의 스크랜톤(M. F. Scranton) 선교사도 "한국에서의 여성 사역"이라는 글에서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1888년) 5월에 우리는 우리 미국 공사로부터 모든 종교적인 지도를 그만두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모든 외국인들을 혐오하게 만들 짖을 했다. 그 때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믿고 있는대로 중국(청나라)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민심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켰다. 몇 주일 동안 군중들은 대단히 흥분했으며, 외국인의 생명과 재산은 위험에 처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사태하에서 우리는 우리 학생들을 이 사태가 수습되어 안정될 때까지 그들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학생들은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을 기뻐하였지만 우리와 헤어지는 인사를 할 때 몹시 슬퍼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가 생명을 잃을 것이며 다시는 우리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차례나 군중들이 우리 대문 주위에 모여들어 우리 고용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수비를 맡을 사람들을 임명하여 그들은 자지도 못하고 우리 거주지를 순찰하였다. 우리들도 우리 미국 공사관의 지시에 따라 지시만 받으면 즉시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 소동은 약 6주일 후에 모두 끝났다. 여학생들은 다시 돌아왔고 사업은 전처럼 계속되었다. 다만 부인반 모임은 그 다음 9월까지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The Korean Repository, 1896. 1, 6쪽)
어떤 기록들에서는 위 자료를 잘못 해석하여 흥분한 군중들이 이화학당 고용인들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이화80년사}, 1968, 60쪽) 이는 명백한 오해다. 이 사건으로 몇몇이 다치고 위협을 당하기는 했어도 목숨을 잃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으며(위에서 인용한 언더우드 부인의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확인된 것은 아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위협적인 시위만 했지 직접 건드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떻든 이 사건은 조선 민중들의 반외세적인 성향 때문에 선교에 일시적인 타격을 가져왔지만 오히려 그 후 외국인들에 대한 그 같은 오해와 모함이 사라졌으며 선교사를 포함한 외국인들의 지위는 한층더 높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