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1-14 지혜로운 인생 2003-10-02 20:15:32 여러분,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참혹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독일군 장교가 포로 수용소 2층 장교 숙소에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2층 베란다 창가에 가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유대인 여자 한 사람이 포로 수용소 마당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습 니다. 독일군 장교는 방에 돌아가서 장총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 여인을 향하여 겨냥했습니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심심풀이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 참혹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 하루는 작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독일군이 키우고 있던 닭 한 마리가 갑자기 없어진 것입니다.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유대인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범인은 솔직히 나오라고 욱박 지르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독일군이 본보기로 맨 앞에 서있는 유대인을 총으로 쏴 죽이면서 고함을 칩니다. "닭을 들고 다니는데 못 보았을 리가 없어. 누구야? 빨리 대답하라 안 그러면 나올 때까지 차례로 너히들 한 사람씩 모두 죽이겠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못 보았단 말이지?" 그러면서 독일군 병사는 두번째 사람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 기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나이 어린 소년 하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습니다. 소년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그 소년을 모습을 보면서, "너냐? 네가 닭을 훔쳤어?"라고 독일군 병사가 호통 을 쳤습니다. 소년은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훔쳤는지 알고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누구야?" 그때 소년은 겁에 질렸으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바로 저 사람입 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를 가리켰겠습니까? 총에 맞아서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이야 이미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지혜로운 답변입니까? 잘못하면 애궃은 많은 사람이 죽을 뻔 하였으나 그 소년의 지혜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간에게 지혜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험한 세상 살아 가는데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몰아 칠 때에 그 소년처럼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능히 고 난을 헤치고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기록한 성경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서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부귀와 권세를 누 렸던 왕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까지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솔로몬 왕이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맨 먼저 한 말이 어떤 말이었습니까 ? (전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1:14) "내가 해 아래 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어느 인생보다도 부와 명예와 지혜를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솔로몬 왕에게 지혜를 주었던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가장 지혜로운 자인지 말씀해주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 니다. 첫 번째 지혜로운 사람은 마지막 날을 보람있고 아름답게 잘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물음의 해답을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통하여 찾는 것입 니다. 잘 사려면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가르침은 삶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인 들에게 기름은 아주 귀중한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즉 기름은 재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보배로운 물질인 향유 기름이라고 잠시 잠깐 사람들에게 일시적으 로 유익은 있지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트렸을 때에 그 옥합 속에서 흘러내리는 보 배로운 향유 기름에서 풍겨 나오는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고 사람들의 기분을 찹 으로 좋게 만들지만 그 기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하여 아름답고 귀한 향유를 사용했다는 그녀의 이름 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있으니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이 그때 잠시 사용되었던 기름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 다. 슈바이처,테레사 수녀, 김구선생님,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그들은 세상을 떠나 셨지만 그 이름은 아름답고 영원합니다. 재물과 물질의 모든 사물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이름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1절에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성경은 인생을 나그네 길로 비유를 합니다. 나그네는 고달픈 생활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여행을 한다해도 일단 고향을 떠나고 집 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안정되지 못한 생활이 시작됩니다. 여행은 고달프고 피곤합니다. 여행을 해보면 한 며칠은 즐거운데 그 다음부터는 집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타향살이하던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 올 때는 금의 환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에는 주님 앞으로 금의환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출생할 때에 아기의 업적은 아무것도 없음으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살면서 많은 업적을 쌓고 훌륭한 일을 함으로서 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 후서5:1-2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 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장막 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장막은 쉽게 망가집니다. 장막은 비바람에 시달림을 당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는 쉽게 병들고 망가집니다. 인생의 비바람에 젖어 찢어지기도 합 니다. 심하게 요동하기도 합니다. 사업의 실패와 실직이라는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여 찢겨나간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질병의 몰아친 비바람에 쓰러진 장막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 칠 때는 든든한 장마고 쉽게 무너 집니다. 마치 건강하던 40대의 남자들 이 갑자기 넘어가기도 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유신은 천막같이 연약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영원한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 니다. < 예 화 >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앗습니다. 노벨은 1888년경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 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노벨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다. 그 기사는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이 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깊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노 벨 평화상에 희사를 한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잘못 실린 기사를 보고 죽음이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노벨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살인무기를 만든 노벨이 평화의 노벨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반명에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은 유다라는 그의 이름은 "praise,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는 얼마나 좋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그러나 죽을 때 그는 비겁한 배반자로 죽었기 그의 이름은 죄인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출생하는 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다 살고 난 뒤에 결정된다 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고생하시고 가난하게 사셨지만 믿음이 좋은신 기도하는 어머니였지 라고 자손들에게 기억되는 어머니여야 할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초상집에 가면 아무래도 마음이 진지해집니다.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끝나는 날이 있구나. 그렇다면 사는 동안 열심히 잘 살아야지. 죽 는날 사람들의 칭찬으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겨야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이 절로 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서 흥청망청 취해서 몽롱한 표정을 짖는 것 보 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죽는 날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죽는 날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는 이 땅에 것에 욕심을 내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을 사모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절 4절 말씀을 보면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초상집의 그 숙연한 슬픔이 잔칫집의 웃고 떠드는 헤픈 웃음보다도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잔칫집에 가면 술먹고 떠들고 술김에 마구 있는날 없는말 해대고 그러다 보니 싸움판이 되고 술 주정에 난장판이 되며 술김에 이성이 흐려지고 마음이 느슨해저서 실수와 잘못을 범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며 결국 타락하고 죄를 짓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면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것이로구나 그러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새롭게 다짐하게 되며 지금까지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제 내가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라고 진실한 마음 가짐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슬픔이 웃음보다도 더 낫다는 것입니다. 나이트 클럽이나 술집에가서 철야하고 나오는 사람과 교회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여 성령 의 기쁨에 취해서 나오는 사람과는 그 얼굴에서 부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우매자의 차이는 지혜자는 자기의 마지막 날을 예비하면서 살아가지만 우매자는 그저 눈앞의 육신의 쾌락과 즐기는 일에 마음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쫒아 허랑 방탕하는 인생이 아니라 진지하게 보람있게 인생을 실 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절 6절의 말씀을 보면 .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우매한 사람들은 아첨하는 소리에 귀를 밝히고 책망하고 충고해주는 소리를 듣기싫어 합 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아첨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자기를 위해서 진정으로 책망하고 충고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더 좋아합니다. 쓴 약과 쓴 말은 몸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입에 단것과 귀에 단말은 처음에는 좋은 듯하 지만 결국은 해로운 것입니다. 우매자의 아첨하는 말을 솔로몬은 솥밑에서 타는 가시나무로 비유를 했습니다.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탈 때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소리만 요란하지 화 력이 없어서 물도 제대로 뎁히지 못합니다. 이와같이 웃기는 소리와 아첨하는 말은 마치 가시나무 타는 것처럼 소리만 요란하지 아 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작불은 소리는 없지만 화력도 좋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다.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탐학이란 탐욕이 많고 포악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탐욕 때문에, 뇌물 때문에 잘못된 길을 걸어가다가 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즐겨 둘어야 합 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나에게 아첨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내가 듣기 싫은 충고 와 책망하는 말일 지라도 진정 나를 위한 말이라면 즐겨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 다. 여러분 인생은 마치 등산하는 것과 같아서 산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수고의 땀을 흘 린만큼 오르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의 땀흘리지 않고 쉽게 정상에 오르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늘도 쓸데없이 뒤를 돌아 보거나 옆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정상에 계신 주님만을 바라 보고 한걸음 한걸음 최선을 다하는 거북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당연히 끝이 시작보다 더 나아야 합니다. 마라톤에서 시작하는 출발점에서 멋있게 잘 달려도 마지막 끝에 가서 선두로 들어오지 못하면 아무리 시작이 좋은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시작할 때는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형편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습니 다. 끝이 시작보다 못한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의 신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련을 다 이겨내고, 끝에 가서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끝이 시작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끝이 시작보다 더 낫을 수가 있을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8절 하반부와 9절에 나왔습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끝에 승리를 하려면 참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이 와도 또한 억울하고 분한 일을 만나도 참고 또 참는 마음을 갖는 것 입니다. 최후의 승자는 끝까지 인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참는 사람에게 돌아 가는 것 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마음을 낮추는 사람이 마지막에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매자는 급한 마음을 가집니다. 쉽게 화를 발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 다. 사람을 살인하고 감옥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 때 잠깐만 참았으면 그런일이 없었을 텐데 하고 후회를 할 것입니다. 지혜스러운 사람은 참는 성품을 갖았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급한 마음에 화를 잘 내는 성 질을 갖은 사람입니다. 결국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뿐아니라 10절 말씀을 보면.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래뵈도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이런 말은 다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갈수록 옛날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 는 것입니다. 과거 금송아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치고 똑독한 사람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제 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 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최후에 웃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1절12절 말씀을 보면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 지혜는 부모님에게서 상속받는 것 같이 내게 아름다운 유업입니다. 그리고 해 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지혜는 매우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유익주는가? 험한 세상을 살아 갈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벌어논 돈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지혜와 물질,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지혜는 없고 물질만 있으면,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탐욕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자는 지혜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물질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생명을 어떻게 보존합니까?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그 일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타락하거나 방종하지 않으며 생명에 위험이 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인간의 능력으로 능히 바꿀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신체적으로 억울해 하는 굽은 것도 있고 환경적으로 불리하게 굽은 것도 있으 며 가족간에도 한탄하는 굽은 것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섭리라면 그것을 사람의 힘으로 바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한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미 주신 것에 참고 순종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매함을 피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마음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 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짖고 감옥소에 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누가 제일 슬퍼하겠습니까? 당연히 그 사람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가 그 사람을 제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소위 일류 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합시다. 누가 제일 기뻐할까요? 당연히 그 사람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그 사람을 제일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를 짖는 것을 제일 슬퍼하시며 반대로 내가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제일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긍휼하심 앞에 섰을 때에 우리는 어리섞은 잘 못을 범하지 않음으로서 죄를 짖지 않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히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모든 우매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즉 결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한 날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을 주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충분한 행복을 주시고 동시에 등에 무거운 짐을 지어 주셨다는 것 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의지하여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언행이 달라 지고 성품이 달라 저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생각하는 것이 달라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찾아야 하며 그래서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삶의 목표가 달라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쁜 일과 곤고한 일을 만났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의 생각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소에 그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 지고 인간성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착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되고,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됩니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고난을 만나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 형통한 날을 만나도 교만하지 않고 겸 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추수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추수할 때가 있으면 반대로 땀흘려 심는 수고 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곤한날이 오면 1. 나 자신의 죄악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을 당하면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또는 환경에 돌립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에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들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거룩하게 살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말씀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3. 믿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믿음을 통할 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게 되고 승 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곤고한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와함께 하신다는 믿음. 그리고 이 환난이 지나면 예비하신 축복이 있다는 믿음으로 생각할 때 곤고한 날은 형통의 날로, 슬픔의 날은 기쁨 의 날로 바뀔 것입니다. 4. 곤고한 날이 올수록 바빠야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마라톤 선수들은 절대로 암에 안 걸린답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한번 뛰 었다 하면 2시간, 3시간씩 내리 달리니까 온 몸에 땀을 비오듯이 흘립니다. 체내에 있던 모든 병균들, 모든 불순물이 전부 땀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에 절대로 암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게으른 사람들이 말이 많고, 불평이 많고, 교만하고, 남을 미워합니다. 바쁜 사람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도 바쁘고, 이것저것 바쁘기 때문에 쓸데없는 잡념이나 관념 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5,곤고한 날이 와도 작은 일에 성실하시 기 바랍니다. 파리에 처음으로 은행이 생겼을 때에 어느 날 금발 미녀가 삶에 곤고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 생긴 은행에 취직을 하고 싶어서 은행을 찾아가 젊은 은행장을 만났 습니다. 은행장은 은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자리가 없다 고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면전에서 퇴자를 맞아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행장실 을 나가려다가 마침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작은 핀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 을 주워 옆에 있는 책상 위에 놓고 나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은행장이 그녀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 아가씨를 쓰기로 한 것입니 다. 은행장이 그녀의 성실함을 미리 엿 본 것입니다. 그 후 그 아가씨는 성실하게 일했고 마침내 ! 그 은행장과 결혼했습니다. 이 아가씨는 작은 일에서부터 성실했기 때문에 은행장의 아 내까지 된 것입 니다. 이처럼 성실함이 그 사람의 앞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많은 사 람 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삶을 잘 준비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죽음 후에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미리 생각하며 반대로 오늘의 삶을 충실하는 사는 사 람이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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